
2010 9월 말 안양의 하늘^^
예전에 한 예술단체에서 잠깐 일을 도와준 적이 있었다. 사람들과의 첫 만남에서 수줍음이 많고 숫기가 없었던 난-일명 첫만남 컴플렉스-조용히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단체의 대표라는 사람이 나를 보더니 대뜸, '남자답게 좀 행동해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엔 어린 마음에 그리고 숱하게 들어왔던 말이기에 '네'하며 웃어 넘겼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썩 좋은 기억은 아니다. 그 대표가 말하던 '남자답게'란 어떤 의미였을까? 목소리가 우렁차고, 배짱이 크고, 무거운 물건을 척척 들고, 눈물을 흘릴 줄 모르는, 그런 남자를 말하는 것이었을까?
그 뒤로 사람과의 관계, 특히 '이해'라는 것에 많은 생각을 했고, 그것을 작업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다양성을 존중하라! 라고 한참 외치고 다닐 때, 한 친구가 곧 입대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친한 친구였는데, 나와는 성격이 정 반대인 아이였다. 마초까지는 아니었지만-위에 써놓은 대표가 생각하는 남자다움의 기준에 비교한다면-적당한 남자다움과 언행, 특히 이성친구 없이는 죽고 못사는 성격을 가진 친구였다. 나는 이런 친구가 못마땅해서 가끔 따끔한 충고를 하기도 했다.
그 친구와 약속을 잡고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친구는 여지없이 이성친구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이런이런 얘들을 사귀었는데 걔가 제일 예쁘더라, 누구랑은 아직도 연락한다, 보고싶다 등등. 내게는 지루한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려니 귀가 간지러웠다. 차라리 이럴 시간에 군 제대 후 계획이나 앞날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한다면 충분히 영양가 있는 시간이 될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친구에게 '내가 너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거야' 라며 '너를 고쳐주고 싶다'고 충고삼아 말했더니, 그것을 잠잠히 듣던 친구가 내게 한마디 했다. '그건 너가 나를 이해하지 않기 때문이야.'
순간, 내 눈은 길을 잃었다. 부끄러워 어디에다 시선을 둬야할지 몰랐고 머리는 망치로 한대 얻어맞은 듯 했다. 어리석게도, 예전 그 대표가 내게 했던 말을 내 친구에게 그대로 하고 있던 것이었다.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해주기를 바라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았다니..
그 때 알았다. 내가 존중받고 이해받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도 존중하고 이해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느정도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그 자체로 고통일 수 있다. 하지만 본래 이해라는 것은 누구나 할 수있는 것이다. 다만, 이해는 했지만 용납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내가 그 고통을 참을 수 있는지 없는지가 달라진다. 즉 이해와 용납이 둘 다 가능하다면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한 것이고, 이해는 하지만 용납할 순 없다면 어느정도 선에서 그를 이해한 것이다.(고통은 받지 않으므로.) 그러나 이해와 용납 둘 다 불가능 하다면, 그것은 더이상 이해의 영역이 아닌 '포기'라고 생각한다.
너무 당연한 말들을 써놓아서 조금 민망하긴 하지만..^^
아무튼, 이 일이 내 삶의 가치관이 성립된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내 삶의 가치관이다.
그렇게. 성장해가고 다른 이들과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다.
2010 9월 말, 초가을에
@아사남
(이 외에 '경박하게, 맹랑하게 살아가기'라는 인생목표가 있습니다만 간단한거라 이건 나중에 기회가 되면 쓰도록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