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c AG 프로젝트 그 첫 번째 실천 ‘가라사니 진열창을 마치며..
(생활 속 전시)

안녕!
나를 처음 보는 친구도 있을 거구 인터넷상에서 본 적 있는 친구도 있겠지 얼마 전에 21c AG 프로젝트 그 첫 번째 실천 ‘가라사니 진열창’ 이라는 프로젝트를 끝냈거든 그 과정들을 함께 나누고 싶어 편지를 뛰 운다.

21c AG가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지 현 시대 미술 발전을 영어로 하면 21c Art Growth 가 되고 이 영어의 이니셜을 따서 붙인 이름이지 현 시대 미술 발전을 위한 프로젝트, 프로젝트가 좀 거창하지.
뭐라구! 너 내들이 뭔데 미술을 발전시킨 다 마냐 하냐구? 그럼 내가 지금까지 작업을 하면서 하나하나 느낌 점 들을 알면 조금은 이해가 될 거야 나의 절실한 마음을 말이야.
자 들어봐!
난 부산공예고등학교에 들어갔지 아버지의 권유로 어릴 때부터 만드는 것을 좋아했거든. 그리고 1학년 때부터 조소 부에 가입해서 선배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지. 선배들은 정말 무서웠고 그 시간들은 힘들었지만(선배들이 들으면 콧방귀 낼 것 같군) 정말 작업에 대한 열정을 몸소 배운 곳이고 창작의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알았단다. 그리고 선배의 이 한마디는 아마도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아! ‘미친 듯이 작업해라?’ 난 이때부터 전업 작가가 꿈 이였지.
그리고 동아대에 들어와 학교 게시판에 공모전에 관한 포스터가 붙어 있더군. 와!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을 해서 상 타면 상금도 준다고 좋아했었지.. 그러나 조금씩 미술계의 현실을 알아가게 되었고 이 현실은 즐거워서 하게 된 작업이 현실과 싸워야 될 수단이 되었고 고민 덩어리로 바뀌어 버렸단다. 대학에 들어와 아배조각회에 들어 전시를 해보았는데 그 느낌은 허탈감.., 바로 ‘동네잔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 미술에 관심 있는 소수의 사람과 미술계에 몸담고 있거나 작가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만 전시를 관람하러 온다는 것 그것도 오픈 날만 성황이고 그 다음날부터는 썰렁한 갤러리가 되어버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것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은 미술 쪽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을 말 해주고 있었지 미술 작품을 감상하기 보다는 차라리 영화나 음악을 듣는 것이 더 즐겁다는 것…….
내가 따르던 선배가 공모전에서 특선을 받은 작품을 부수고 있었지. 난 놀라며 선배에게 말했다 왜? 작품을 부수냐고……. 선배의 말은 작품을 둘 곳이 없다는 것이었지. 그리고 사진으로 남잖아 라고 말씀 하시더라구. 이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지, 열정과 시간과 돈을 투자한 결과물은 갈 곳 없어 방치되어 지다가 결국은 쓰레기가 되어 버린다는 것, 이 문제는 우리학교만의 문제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학년이 올라 갈수록 한두 명 빼고는 작업보다는 다른 쪽의 일을 찾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실임을 느꼈지 작업은 단지 학점을 받기 위해 마지못해 하는 것으로 전락해 버리고. 그리고 작업을 포기 하지 않고 끝까지 하시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다는 생각도 들어. 내주위에는 어렵게 작업하시는 분들이 많았거든. 이런 현실을 알고 군대에 입대해 이런 생각들의 대안을 찾아보려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지 그리고 이런 고민을 혼자 하는 것보다 문제를 절감하는 사람들과 함께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현시대미술발전모임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만들게 되었단다. 뭐 그 문제가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그것은 말이지…. 위의 글을 다시 한번 읽어 봐 (^..^;)
그리고 현대 미술의 욕망과 상실 이란 책을 우연히 읽게 되었고 거기에 고흐가 남긴 글은 가슴이 메어 눈물이 나오더군. 고흐 자신도 힘들면서 미래의 화가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감동을 주더군. 어떤 글이냐구 바로 이글이야

‘미래의 화가는 보잘 것 없는 카페에서 살거나 주아브병 상대의 사창가(흑인병사들을 상대하는 싸구려 사창가)에 드나들지 않으리라.’

이 책을 읽고 현시대에 미술 발전을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은 더욱 확고해 졌지. 지금 현시점에서 미술 교육과 대중들을 탓하기보다 작가 스스로가 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
예술은 변화 하는 것이지 어찌 발전 하느냐는 말을 한다면 난 이런 말을 해. 아버지랑 술을 먹다가 하신 말씀이 ‘어제한 생각보다 오늘 한 생각이 더 진취적이고 건설적이라면 그것은 발전이다.’라는 말을 하시더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고 이 말씀에 내가 좀더 덧붙인다면 그 생각들을 몸소 실천에 옮긴 다면 그것은 진정한 발전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에 그 첫 번째 실천이란 말도 넣게 되었지. 21c AGG가 추구하는 바는 미술을 향류하고 있는 특정소수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전문인들도 함께 순수미술을 공유하고 소통하자는 것이지. 즉 향유 층을 넓혀 나가는 것을 발전이라고 본단다. 이것은 결코 다른 분야의 전문인의 시각에 맞추어 작품을 생산해 그렇게 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야. (수신자 중심의 작업이라면 정형화 될 수밖에 없겠지.) 이것은 장기전이고 이번 프로젝트는 첫 걸음에 불가 할 뿐이야. 대중적이지 않는 것을 대중적으로 만들기는 쉬운 일이 아니니까!
이런 대안을 찾기 위해 온라인상에서 소중한 사람, 열정을 가진 사람(모임의 회원분류 이름) 들과 함께 토론을 하다가 말로 떠드는 것 보다 우리가 하는 작업으로 실천하자는 뜻을 모아 2002년 2월부터 오프라인에서도 만나 프로젝트를 진행 해 나갔지

그럼 가라사니 진열창이라는 말은 또 무엇인지 궁금하지.
현시대미술발전모임(이하 현미발모로 할께)은 생활 속 전시를 상가의 쇼윈도에서 할 계획을 세웠다. 부산대학교 앞에 의류 상설할인 매장이 밀집된 거리가 있는데 그 거리는 아주 잘 정돈된 느낌이 들고 흰색으로 칠한 상가도 많고 해서 이 거리의 상가 쇼윈도에서 전시를 하기로 정했단다. 그리고 어떤 주제가 맞을 지에 대해 열정인(프로젝트에 참가한 회원) 들과 고민하였고 작품의 성향을 건드리는 것이 아닌 재미난 주제를 정하자고 의견을 모았어. 여기서 난 왠지 순수우리말에서 찾고 싶었지. 놀랄 일은 아니지만 상설 할인매장 거리에 있는 상가들 전부 외국어 브랜드야. 평소 한국적인 것에 관심이 있는 나는 꼭 순수 우리말로 타이틀을 정하고 싶었지. 이것은 나도 느끼는 것이지만 왠지 우리말로 쓰면 세련되어 보이지 않고 촌스럽다는 느낌이 언제부턴가 우리의 뇌리에 박혀 있잖아 외국어를 쓰면 수준 있어 보이고 이런 인식도 깨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 순수우리말 중 이번 전시와 어울릴만한 ‘가라사니’ 라는 말을 선택하게 되었고 뚜렷한 좋은 제목이 나오지 않아서 이 가라사니라는 것으로 정하기로 했지. 가라사니는 순수 우리말로 사물을 판단 할 수 있는 지각이나 실마리를 일컫는 말이야. 이 단어와 진열창이라는 단어를 합쳐 ‘가라시니 진열창’이 되었단다. 이 제목이 의미하는 것은 오픈 된 상업적 공간에 미술 작품이 놓여짐으로써 일반인들은 우연적 경험을 통해 새로운 시점에서 미술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실마리를 얻게 된다는 뜻이지. 어때 그럴 듯 하지! 이것은 어쩌면 강요일 수도 있지 보기 싫은 사람들도 볼 수밖에 없는 그래서 쇼윈도라는 공간과 상가의 분위기를 고려해서 작품에 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다른 분야의 전문인들을 배려하기 위해 작품에 대한 텍스트도 준비했었어. 이런 프로젝트들이 활성화 되어 생활 속에서 미술을 만난 사람들이 미술전시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미술관을 자연스레 찾게 될 거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이 프로젝트를 구체화 시키기에 앞서 부산시청 홈페이지 여론조사 기관에 설문 의로도 했었지. 754명이 답한 결과를 보면 미술 작품을 감상하러 갤러리에 잘 오지 않는 다는 것이 보편적 이였고 한번도 가지 않았다라고 말한 사람이 10%나 되었어. 관객들은 작품이 의미하는 것을 알고 싶어 하고 생활 속 전시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통계를 통해 확인하였고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갔단다.

이제 상가를 섭외하면서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해 줄게 정말 힘든 일이었지. 현미발모는 그 거리에 있는 개개의 상가 약42개 상가를 방문하여 자료 만든 것을 드리고 상점주님에게 전해 달라고 직원에게 말하며 또 찾아오겠다고 하였지. 일주일 후에 찾아가 구두로 확답을 받는 것이 상점주님을 통한 말도 아니고 해서 영 시원찮았지 어떤 상가에서 이 거리의 상가 회장님이 있다고 해서 그 분을 통해 섭외하면 더 빠르다고 하시더군 그래서 시간을 내어 회장님을 만나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을 드렸더니 흔쾌히 승낙을 하시면서 ‘내가 총대를 메고 해보지’ 하시는 거야 상가 모임이 있을 때 불러 준다고 하시고 정말 기뻤지 일이 빨리 순조롭게 진행되어서 말이야. 그런데 이게 웬걸! 일주일이 지나고 2주가 지나도 소식이 없는 거야 전화해보면 바빠서 좀더 기다려 보라고 하더군. 그래서 좀더 기다리다가 전화를 해보니 아니 다시 개개 별로 만나서 섭외하라고 하는 거야 내가 미처! 미처! 그래서 다시 상점주님을 직접만나 얘기를 해야 하는데 만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어. 그래서 협약서를 만들어 상가 직원에게 상점주님이 오시면 보여드리고 사인을 부탁드렸지 이 협약서는 현미발모와 상가의 약정문서로 서로 보관하는 것이라고 어떤 상가는 쇼윈도우 공간을 조금만 할애해 달라고 하니까 말도 못 꺼내게 하더라고 어떤 상가는 우리상가 빼고 다른 상가들이 다 전시하면 우리 상가가 튀겠네요! 하고 말하는 어처구니없는 상가도 있었고 42군데 상가중 유일하게 겟유즈드 상가 점주님은 회화 작품도 산적이 있다면서 흔쾌히 허락해주었고 홍보 인쇄물 비용을 요청했는데 24개 상가중 두군데 에서 협조 금을 내어 주셨는데 바로 겟유즈드와 마지막날 작품을 철수 하는데 올전에서 돈을 주시더라구. 원래 공문을 보낼때 7월 29일까지 입금해 주는 것이였는데 받을까 말까 망설였지. 왜냐면 팸플릿에 협찬상가로 넣어 드려야 하는데 정해진 날짜에 주시지 않아 팸플릿에는 상가 로고가 빠져 있었거든. 그래서 안 받을려고 했는데 구지 주시는 거야 수고했다면서, 뜻밖의 일이 였지. 정말 감사했어. 안그래도 발송비가 모자랐거든.
철저히 상업성을 뛰는 상가에 작품을 전시한다는 발상을 좋게 보는 이들은 드물었어. 이런 예를 들어 본적도 없었을 테니까 말이야. 이번전시로 이거리가 문화의 거리로 인식되어 질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미술전시를 통해 이 거리를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는 것을 메리트로 설득을 시켰지. 상점의 직원들과 점주님을 대하면서 더욱 미술 발전을 시켜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 결과 24개의 상가가 참여하기로 했었고 작가와 상가를 정하고 작품 구상에 들어가고 부족한 작가들을 더 섭외하고 하면서 어느 정도 작품의 윤곽이 들어나기 시작하였지. 열정인들은 상가에 찾아가 점주님을 만나 작품에 대해 설명을 드리고 설치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고 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갔어. 오픈을 3주정도 앞두고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와 브로셔를 만들어 상가에 전달하려고 갔었는데 글쎄 텅 비워 버린 상가가 2군데나 되고 내부공사 관계로 전시가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을 하는 상가도 있었지 전시는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말이야 그래서 다시 참여하지 않는 상가에 가서 상황을 설명 드리고 전시에 참여해달라고 부탁드리고 해서 끝내는 22군데의 상가가 참가 하였지. 올젠 상가는 전시를 위해 내부공사 시기도 연기해 주셨고 말도 없이 비워 버린 상가 땜에 당황하는 나를 보고 걱정해준 디데상가 누나에게(이상하게 누나라고 부르고 싶네) 정말 고마웠지. 그리고 어쩔 수없이 상가가 바뀌고 협찬금 문제로 상가와 다툼이 있어 전시를 하지 못한 열정인들도 발생하게 되었단다.(미안한 마음)
디스플레이 전날에 이미지 관리상 머리 하러 가는 여유도 부렸다. 내 머리가 지저분하게 좀 길거든 5개월 만에 다시 스트레이트를 했지 같이 전시하는 미정이 남편이 하는 미용실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머리 시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 스트레이트를 하고 나서 대전에서 전시를 같이 하기 위해 내려온 동수를 기다리다가 부산일보가 있어 신문을 펼쳤는데 문화면에 미술전시회 틀을 거부한다는 제목으로 ‘가라사니 진열창’ 전시에 관한 기사가 나있는 거야! 기쁜 마음과 드디어 벼루고 벼룬 프로젝트의 오픈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
드디어 디스플레이(이하 디피라고 할께) 하는 날이 내일로 다가 왔을 때 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지. 또 상가 팔아 버리고 없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되고 1년 6개월을 준비한 프로젝트의 결실을 보게 된다는 마음에 설래 이기도 하고 말이야. 디피 당일 역시 또 복병을 만나고 말았지. 사전에 연락도 없이 쇼윈도에 5일까지 휴가입니다 하고 붙여 놓은 상가, 내부공사를 6일까지 한다고 붙여 놓은 상가가 발생, 환장할 노릇 이였단다. 그래도 열정인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두 상가와 작품이 덜된 열정인 빼고는 디피는 무사히 잘 끝마쳤지. 상가의 벽을 뚫지 못하게 하는 대부분의 상가에 행거를 준비해서 평면 작품을 걸었고 마음씨 좋은 상가 직원은 쇼윈도 공간을 좀더 내어 주기도 하고 그날 디피를 하지 못한 상가는 오픈날을 넘겨 버렸지만 작품 설치를 무사히 끝마쳤지.
아참! 디피 하는 날 케리커쳐 이벤트도 준비했었단다. 남천동 비투비 미술학원에서 도움을 주었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더군. 모인 사람들에게 브로셔를 나누어 주며 전시를 하고 있음을 알렸지 이벤트 장면을 찍어 현미발모카페에 동영상으로 올려두었거든 보고 싶으면 카페에 들어와서 봐.
작품을 다 설치하고 작품들을 둘러보니 넘 상가와 잘 어울리는 거야. 매장에서한 디피처럼 말이지 쇼윈도라는 공간과 어울리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노파심은 살아져 버리고 말이야 원래 디피를 하고 나서 상가에 붙여 있는 포스터를 때 내려고 했는데 열정인 대부분이 붙여 두자고 하더군. 그리고 작품 설명글도 붙여 놓고 해서 작품인지 관객들은 알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여기서 느낀 것이 이미정 선생님에게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서 말씀 드렸더니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나더군. 그런 협소한(보통 1m정도의 공간을 할애 받음) 공간에서는 작품이 개념적이어야 된다고 하셨지. 그 말이 실감이 나더라구. 조형성만 살리고 개념이 적으면 그 작품은 어쩌면 쇼윈도우를 장식하는 것으로 바께는 보이지 않으니까 말이야! 디피를 끝내고 오픈날이였지 하늘은 우울하였지만고 현미발모는 손가락 뜨기 이벤트도 진행했단다. 자신의 손가락을 떠서 목걸이나 핸드폰 줄, 팔 지로 쓸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것인데 처음에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지만 손가락 뜨는 과정을 보고 조금씩 모여 들더군. 징그럽다는 말도 하는 이들도 있었구. 그래서 난 ‘자기 손가락을 떠서 달고 다니는데 징그럽다고 하시면 안 되죠’ 하고 답했지. 이벤트도 성공적으로 잘 마쳤지. 문제는 다음날 부터였어. 이놈의 비가 계속 오는 거야. 전시를 망칠려구 작정한 것처럼 그냥 우울하게만 있어주어도 고맙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리고 정말 이상하게도 몸을 다치거나 아픈 열정인이 많았단다. 다리를 다친 대일이형, 신장염에 걸린 선희 누나 디피한날 술 땜에 코를 다친 부회장 성효형(형은 입원까지해서 작품을 설치 못했지) 그리고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한 동수 참 이상한 일이지 하늘은 계속 울기만 하고.. 2주간 전시를 잡은 것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 거의 전시 기간 4분의 3은 비가 왔었지.
이렇게 비와 함께 전시는 일주일이 지나갈 무렵 뜻밖의 전화가 왔지 류병학 이라면서.. 전시를 보려고 하는데 언제까지 하냐구. 난 류병학 선생님이 누군지 익히 잘 알고 있었지 평소 존경하던 선생님이거든 난 당황하여 형식적으로 답변을 하였고 지금은 서울이라면서 내일이나 모래쯤 전시를 보러 갈 거라고 하시더라고. 정말 이틀이 지난 후에 전화가 오더군. 부산대학교 어디에서 전시를 하고 있냐고. 그래서 팸플릿 일이 급해서 일 보고 제가 가서 안내해 드리겠다고 말씀드리고 만나기로 했지. 팸플릿 일을 보고 부대로 당장 달려갔지 가서 기다리고 있으니 전화가 오더라구. 처음 상가에 있다면서 난 맨 끝 상가에 있었는데 뛰어가서 선생님을 만났지 머리는 나보다 3배 이상 기셨고 모자를 쓰고 계시더군. 악수를 하고 내가 건넨 말은 평소 존경하던 선생님이라는 말을 전했지.. 선생님과 함께 전시된 작품들을 둘러보았고 조금은 긴장이 되더군. 이분의 글은 장난이 아니거든 무서운 분이잖아. 하지만 글에서 풍기는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온화한 느낌 이였지. 선생님은 일일이 하나하나 다 물어 보시더군 브러셔를 보시고 왜 작품이 없냐면서 난 상황을 설명 드리고 선생님은 왜 바뀌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메모를 하시더군. 그리고 역시 평론가답게 문제점들을 파악하시더군. 상가에 들어가 작품에 대한 반응도 물어 보시고 작품을 살려고 한 사람은 없었느냐, 혹 작품이 계속 설치되어 있다면 괜찮을 것 같으냐 등등..
작품을 다 둘러보고 점심시간이여서 식사라도 함께 하자고 했는데 같이 온 분들이 있다면서 커피숍으로 향하였지. 이번 가라시니 진열창에 대해 커피숍에서 좀더 질문을 하시더라구. 이 전시를 알게 된 것은 독일에서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알았다면서 두눈의 글을 많이 보았다고 하시더군. 작가 모집할 때부터 알고 있었다면서 전시가 취소 된 줄 알았는데 최근에 알게 되었다고 하시더군.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열심히 하니까 선생님을 만나게 되는 군요. 라는 말을 전했다. 정말 내게는 큰일이지. 류병학 선생님은 격식도 없으시고 편하게 대해주시더군. 선생님을 아시는 분과 만나 식사를 같이하기 위해 해운대로 차를 타고 이동했는데 차안에서 정말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지. 고개를 끄떡이며 열심히 들었지 그 말씀 듣고 느낀 것을 얘기하자면 ‘끊기를 가져라 한번 안 된다고 해서 물러나면 안 된다. 나이가 들어도 작업에 대한 열정은 젊은 마음그대로 지속하자,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자. 가고 싶거나 보고 싶은 것은 꼭 보자 ,역시 예술은 돈과는 별계의 것이다 ,정의로운 분들이 분명 있다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준비해서 터트리자.’ 라는 것 정말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단다. 선생님은 요즘은 글 쓰시는 것 보다 작가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전시 기획을 많이 하신데. 식사를 하고 칸지 라는 갤러리에 들리어 작품을 보고 그곳 관계자들도 만나고 선생님과는 해어졌지. 또 언제 쯤 만날 수 있을까? 꿈을 향해 포기 하지 않고 열심이 달린다면 또 볼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이날은 내겐 뜻 깊은 날이라 생각해.

마지막으로 철수 하는 날이 다가 왔어. 다행이 비는 오지 않았지. 고마운 마음에 행사를 알리기 위해 걸어 두었던 현수막을 때고 참여 상가에게 감사하다는 뜻으로 그리고 다음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예술은 삶의 활력소를 더 해 줍니다. 참여해주신 상가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21c AG프로젝트 그 첫 번째 실천 ‘가라사니 진열창’ 물러 갑니다. 라는 현수막을 걸고 아쉬운 마음으로 행사의 종결을 알렸단다.

이렇게 전시는 끝이 났단다. 분명 이 전시는 부산이라는 지역에서 순수 미술이 상업적 공간에도 침투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고 적어도 22군데 상가만큼은 작가와 작품을 대하는 것이 조금은 나아 졌지 않을까 생각해. 그리고 끝까지 함께 해준 열 정인들이 있기에 두 번째 프로젝트도 잘 이루어 질 거라 믿어. 21c AG 프로젝트 그 두 번째 궁금하지 않니? 다음번에는 원래 세운 기획안 되로 3파트로 나누어 진행할 거야 거리의 퍼포먼스 생활 속 전시, 끝으로 갤러리에서의 전시를……. 생활 속 전시는 백화점을 뚫어 볼까 생각하고 있지. 두 번째 프로젝트는 열정인들과 좀더 즐겁게 추진할 수 있을 것 같아. 너도 함께 해보고 싶지 않니? 긴 글 읽는다고 수고 많았어 친구야! 이 글을 끝까지 읽었다면 우린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어! (뭐 원래부터 현미발모의 친구였다구?) 지역 나이 신분을 떠나 같은 생각을 가졌다면 말이야. 또 만날 날 까지 잘 지내.

ps: 꿈이 없는 자는 희망이 없고 희망이 없는 자는 살 가치가 없다.